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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PD의 토크멘터리 조선왕조실록2-예종부터 중종까지
저자 : 왕현철 ㅣ 출판사 : 스마트북스

2022.10.28 ㅣ 328p ㅣ ISBN-13 : 9791190238687

정가17,800
판매가16,020(10%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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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 인문 > 한국역사/지리 > 조선시대사
왕PD의 토크멘터리
조선왕조실록 2
(예종·성종·연산군·중종)

“사실에 근거해서 한결같이 기록한다면 천년 후에도 역사는 없어지지 않는다”
- 토크와 다큐로 만나는 역사책-


『왕PD의 토크멘터리 조선왕조실록』은 전직 교양전문 PD가 조선왕조실록 콘텐츠를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맛깔나게 버무려 역사적 지식과 안목을 키워주는 책이다. 조선왕조실록을 현장 중계하듯 깊고 재미있게 해석하며, 우리가 무심코 넘긴 사건과 인물을 포착해 역사 읽기의 재미를 더한다. 조선왕조실록은 다양한 이야기로 현재에 말을 걸고 있다. 그 말은 국가의 운명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까지 다양하게 녹아 있어서 마음의 양식이 되고 풍성한 지식이 된다. 과거의 기록과 삶에는 그 흔적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있다. 우리가 역사에 관심을 갖고 조선왕조실록을 읽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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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머리말 | 조선왕조실록 완독의 즐거움
들어가기 전에 | 조선의 입과 귀 광화문에 서다

1장 예종, 자신의 기둥을 버리다

즉위하자마자 남이를 병조판서에서 해임하다
역사는 전쟁을 통해 영웅을 탄생시킨다 / 내 말은 옳다, 나는 죄가 없다

남이를 처형하다
속내를 드러낸 일생일대의 오산 / 유자광, 문효량과의 대질심문 / 나는 겨우 스물여섯인데 진실로 애석하다

정말 반역을 꾀했을까?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 못 한다면 / 혜성의 출현
[남은 이야기] 남이의 활

귀성군 이준, 예종의 기둥으로 만들다
이시애의 난은 왜 일어났을까? / 진압군의 책임자가 되다 /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다 / 한명회는 지는 해, 이준은 뜨는 해
[남은 이야기] 이준에 대한 세조의 사랑

27세 이준, 영의정의 독배를 마시다
세조의 파격적 발탁 / 영의정에서 3개월 후 쫓겨난 이유 / 신공신의 싹을 자르려는 구공신의 반격 / 두 번째 시련 / 이준의 좌절, 신공신의 좌절
[남은 이야기] 세조의 숨겨진 여인 덕중

두 곳의 명당을 빼앗다
명당을 찾아서 / 세 번째 복

2장 성종, 홍문관의 날개와 폐비 윤씨의 비극

예종 승하 당일, 성종이 왕위에 오르다
예종의 갑작스러운 변고 / 자산군이 주상자로 결정되다 / 8시간 만에 조선의 앞날을 결정하다

정희왕후, 정사를 청단하다
정희왕후가 국정 경험이 풍부했던 이유 / 과감한 호패법 개혁 / 가혹한 몽둥이 사용 금지 / 정책기준은 백성의 눈높이 / 정희왕후의 임금 교육법 / 철저한 주변관리 / 익명서와 노비소송
[남은 이야기] 자산군을 왜 주상자로 결정했을까?

성종의 홀로서기 ①-홍문관을 가두다
정희왕후와 원상이 떠난 빈자리, 홍문관의 부상 / 임사홍이라는 벽 / 위험한 발언 / 조선의 기록자 사관과 주서 / 합동상소 / 임사홍을 둘러싼 성종과 신하들의 대격돌 / 홍문관을 감옥에 가두다
[남은 이야기] 홍문관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

성종의 홀로서기 ②-홍문관을 신뢰하다
성종과 종친 이심원의 설전 / 이심원과의 면담으로 홍문관을 복직시키다 / 임사홍의 몰락 / 성종과 홍문관
[남은 이야기] 임사홍의 복수와 자멸

홍문관의 상소 ①-조정을 뒤흔들다
지독한 가뭄 / 홍문관의 가뭄 대책 상소, 조정을 흔들다 / 전례 없는 사직서 행렬 / 석 달 만에 비가 내리다

홍문관의 상소 ②-성종이 바뀌다
홍문관의 상소 / 홍문관 상소와 성종의 맞대응 / 초기와는 다른 불통의 모습
[남은 이야기] 궁궐의 숨은 실세, 봉보부인

두 번째 왕비 윤씨를 맞이하다
왕비 1순위가 된 이유 / 중전 즉위 3개월 만에 원자를 낳다 / 1차 중전 폐비 거론 사건 / 출궁 철회

중전 윤씨를 폐비로 내치다
2차 폐비 거론 사건 / 출궁 / 성종과 대왕대비의 증언 / 어찌 왕비의 탓으로만 돌립니까?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리다
폐비 윤씨에 대한 성종의 분노 / 사약을 내리다 / 역사의 아이러니

최부, 표류에서 무사귀환하다
중국에서 들려온 뜻밖의 소식 / 제주에서 들은 아버지의 부고 / 망망대해에 표류하다 / 중국 절강성 영파부에서 만난 도적 / 절강성에서 수차를 보다 / 표류 6개월 만에 압록강을 넘다

최부의 『표해록』, 충과 효의 갈림길에 서다
최부의 임명과 서경 거부
[남은 이야기] 최부와 송흠의 말 이야기

3장 연산군, 최초의 반정으로 쫓겨나다

연산군, 왕에 오르다
준비된 나라의 새로운 왕 / 굴곡 / 학문을 싫어하는 세자 / 이해할 수 없는 명령들

대쪽 같은 최부와 연산군
성균관 생원을 가두다 / 우이독경 / 조정을 발칵 뒤집은 최부의 상소 / 삼사의 간언을 외면하다

최초의 사화를 일으키다
무오사화의 시작 / 김종직의 조의제문 / 무오사화의 이면

내시 김처선·김순손·김계경
연산군일기에 기록된 김처선 이야기 / 개인 기록물에 담긴 김처선의 간언 / 내시 김순손 / 내시 김계경
[남은 이야기] 내시의 구성과 역할

궁궐의 여인들 ①-궁녀의 다양한 삶과 죽음
정치는 궁중에서 시작된다 / 궁녀 선발이 화제가 된 이유 / 최고의 궁녀와 비련의 궁녀 / 임금의 허락으로 궁녀가 결혼한 경우 / 궁녀를 풀어주는 경우 / 생명이 끈질긴 궁녀 / 왕을 업
신여긴 궁녀
[남은 이야기] 세종 며느리의 비뚤어진 사랑과 두 궁녀의 비극

궁궐의 여인들 ②-궁녀의 별, 상궁
최고 직위 상궁, 누가 무엇을 했을까? / 단종 때 상궁 박씨 / 중종 때 상궁 박씨 / 저주 사건에 등장하는 상궁들 / 교자를 탄 상궁 / 궁궐 화재와 상궁 / 승은을 받은 궁녀들 / 상궁으로
살다간 최씨와 김씨

갑자사화와 연산군의 보복
부왕의 유훈을 어기고 / 피로 물든 궁궐 / 갑자사화

궁궐의 여인들 ③-권력을 공유한 장녹수
연산군을 단숨에 사로잡다 / 인사개입 / 처녀 차출에 손녀를 안 보낸 홍귀달 / 궁녀 전향과 수근비, 옥지향 / 재상을 겁박하는 장녹수의 종 / 장녹수의 집 / 중종반정이 일어나기 10일 전

반정으로 쫓겨나다
거사 당일 / 거사 당일의 연산군 / 거사 다음날
[남은 이야기] 연산군의 최후와 수구초심
[남은 이야기] 연산군의 부인과 자식들

4장 중종의 개혁정치, 조광조와 함께 사라지다

중종반정, 누가 왜 했을까?
성종과 연산군의 인척 박원종 / 박원종이 돌아선 이유 / 성희안은 왜 참여했을까? / 반정의 진짜 동기

첫 정사, 조강지처를 버리다
7일의 왕비 / 반정세력들은 왜 신씨를 내쫓았을까? / 중종은 정말로 그랬어야 했을까?

속내를 감추고 조광조를 죽이려 하다
경복궁의 소란한 밤 / 추국 / 하루 만에 돌변한 왕 / 중종의 속내

주초위왕, 대학자 조광조를 잃다
중종이 증거를 밝히지 않은 이유 / 사약

조광조를 죽이는 밀지
안달복달하는 임금 / 홍경주에게 내린 언문 밀지

중종의 개혁정치 진심이었나? ①-소격서 폐지와 부활
소격서 폐지 / 중종의 응어리

중종의 개혁정치 진심이었나? ②-현량과 설치와 폐지
과거시험 기피 현상 / 조선에서 딱 한번 치러진 현량과 / 현량과의 비극

중종의 개혁정치 진심이었나? ③-위훈삭제와 부활
세종은 왜 공신을 한 명도 임명하지 않았을까? / 중종반정의 공신 수는 왜 많았을까? / 공신 남발 / 정국공신 개정 / 정국공신 개정 10일 만에 철회

조광조에 대한 사랑이 증오로 바뀌다
성균관과 조광조 / 조정에 파란을 일으킨 첫 상소 / 왕의 신뢰, 파격 승진 / 중종에 대한 평가

작서의 변, 의심만으로 죄를 주다
경빈 박씨 / 작서의 변

경빈 박씨와 첫아들을 죽이다
경빈 박씨와 복성군의 죽음
[남은 이야기] 작서의 변과 세자궁 목패 사건의 진범

왕이란 무엇일까?
왕으로서의 무력감
[남은 이야기] 중종은 어떻게 생겼을까?

종계변무를 고치고자 하다
왜곡된 역사 / 중종의 노력 / 뜻밖의 희소식과 굴욕 / 모화관과 태평관에서

경회루 외교, 역사를 바로잡다
경회루에서 / 곤룡포를 질질 끌며 / 경복궁 잔치와 양화도 유람 / 190년 후에야 바로잡힌 역사왜곡
[남은 이야기] 중종의 의녀 대장금

신문고, 임금과 백성의 소통창구
신문고를 칠 수 있는 조건 / 초기에 신문고를 친 사람들은 대부분 사대부 / 신문고를 두드린 일반 백성 / 신문고로 벌 받은 이 / 무고금지법 / 부활한 신문고

상소, 임금과 신하의 소통길
집현전의 상소 / 출세의 디딤돌이 된 유자광의 상소 / 언로를 개방하소서 / 남명 조식의 상소 / 조헌의 지부상소

에필로그

[본 문]

귀성군 이준은 훈구대신들의 벽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세조가 이준에게 내린 4도 병마도총사→오위도총부 도총관→영의정 자리는 오히려 독배가 되어 그의 죽음을 앞당겼다. 세조는 남이와 이준을 등용해서 장차 세자(예종)가 왕위에 올랐을 때 도울 최소한의 시스템을 갖추고자 했다. 그러나 예종은 부왕의 바람을 이어가지 못하고 남이를 죽이고 이준을 내쳤다. 세조의 젊은 인재 등용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다.
-「1장 예종, 자신의 기둥을 버리다」중에서

수렴청정은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임금과 신하들 사이에 발을 드리우고 정사를 처리하는 것으로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엄격하게 보면, 조선에서 수렴청정의 형태로 정사를 시작한 것은 13대 명종부터다. 그 이전 성종 때 정희왕후가 정사에 참여한 것은 ‘정사의 청단’이라고 한다. 청단은 신하들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는 것이다. 즉, 정희왕후는 발을 드리워서 얼굴을 가리는 형태의 수렴청정은 아니었다. (중략) 정희왕후는 정사를 청단한 6일째 과감한 정책을 들고 나왔다. 바로 호패법 개혁이다. 예종의 갑작스러운 승하로 조정이 슬픔에 빠져 있고 장례절차를 논의하고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정희왕후는 원상 한명회와 최항에게 호패법 실시 이후 백성들의 삶이 더욱 궁핍해지고, 한성의 쌀값과 면포값이 치솟고 있다면서 호패법을 폐지하자고 했다. (중략) “호패법을 실시한 목적, 즉 양민과 천민의 인구수는 이제 파악되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의 호패를 반납하지 않고, 호패가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의 호패를 차서 법을 어기고, 이에 따른 형벌이 가혹해져서 백성들이 고통스럽기에 폐지한다.”『성종실록』 즉위년 12월 6일 정희왕후는 조정대신들이 올리는 이야기를 듣고 정사를 판단하는 ‘청단’이 아니라, 자신이 정책을 들고 나와 호패법을 폐지하는 단호함을 보였다. 호패법 폐지로 자신이 국정의 최고 책임자임을 각인시켰다. 그녀가 이토록 서둘러 호패법 폐지를 밀어붙인 것은 세조 때 호패법 폐지 논쟁을 지켜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2장 성종, 홍문관의 날개와 폐비 윤씨의 비극」중에서

월산군의 장인은 병조판서 박중선이고, 동생 자산군의 장인은 한명회다. 주상자를 결정한 당일, 한명회는 신숙주와 더불어 경복궁 현장에 있었고, 박중선은 도둑을 잡기 위해서 전라도에 파견 중이었다. 주상자를 결정하기 위해서 세조의 사위 정현조가 정희왕후와 신숙주 등 조정대신들 사이를 오가면서 서너 차례 조율을 거쳤다. 조율한 내용은 기록에 없으나 조정대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명회를 장인으로 둔 자산군이 유리했을 것이고, 현장에 없었던 박중선을 장인으로 둔 월산군은 불리했을 것으로 추론한다.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는 일찍이 후원자가 없어서 쓰러져 간 단종의 예를 본 바 있다. 어린 임금에게는 든든한 병풍이 필요했다. 장인 한명회는 원상으로서 자산군에게 든든한 병풍이 될 수 있었다. 월산군과 자산군의 차이는 장인이었다. 이로써 자산군 이혈은 차남이었지만, 장인의 후원과 정희왕후의 선택으로 왕위에 오르고 9대 성종이 된 것이다
-「2장 성종, 홍문관의 날개와 폐비 윤씨의 비극」중에서

임금이 사헌부나 사간원에서 올리는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임금의 비위를 맞추려는 독버섯이 자라기 마련이다. 그 독버섯이 자라서 일으킨 것이 연산군4년의 무오사화이다. 무오사화는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제자 김일손이 사초에 실은 것을 유자광 등이 교묘하게 해석해서 문제를 삼은 것이다. 최부도 무오사화에 연관된다. 김종직의 문하생으로서 붕당을 맺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최부는 곤장을 맞고 유배를 가서 6년 후 참형에 처해졌다. 최부가 역경을 딛고 이어온 기개 넘치는 삶은 백성을 위해 충성을 다해서 보필하고자 한 임금으로부터 무너졌다. 연산군은 최부 외에도 부왕 성종이 홍문관을 통해서 배출한 많은 뛰어난 인재들의 생명을 꺾었다. 최부가 연산군이 아닌 세종 같은 성군을 만났다면 『표해록』 이상의 업적을 남겨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을지도 모른다. 인물은 시대와 그를 알아주는 지도자와의 만남도 중요하다.
-「3장 연산군, 최초의 반정으로 쫓겨나다」중에서

중종은 소격서 폐지 논란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중종은 조선에서 처음으로 임금(연산군)을 폐하고 왕좌에 앉았다. 신하들이 힘을 합치면 임금도 쫓아내는 선례가 되었으니 자신도 무력화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중종은 비록 임금이지만 신하들과 1 대 99가 되어 자신의 의견을 철회해야 하는 무력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자신의 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을 수도 있다. 이것을 반면교사로 삼았을까? 중종은 기묘사화에서 남곤·홍경주·심정 등을 자신의 세력으로 만들고, 실체 없는 ‘조정’을 내세워서 조광조와 그 세력을 제거한 것이다.
-「4장 중종의 개혁정치, 조광조와 함께 사라지다」중에서

중종반정의 공신록을 보면 납득되지 않는 공신이 부지기수였다. 연산군 폭정을 도운 유자광이 공신록 작성을 주도하면서 자신도 공신에 올렸고, 신은윤은 연산군의 폭정을 도와서 통정대부에 올랐고 궁녀와 결탁해서 남의 집까지 빼앗았음에도 공신에 올랐으며, 반정 당일 연산군의 승지였던 윤장이나 주서 이희옹은 반정 소식을 듣고 수챗구멍으로 빠져나갔으나 반정에 가담한 것처럼 행동해서 공신에 올랐다. 내시 6명도 이례적으로 공신에 올랐다. 일반적으로 내시는 공이 있으면 상을 주었다. 정국공신은 누가 보아도 기준이 모호하고, 공신을 남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산군을 쫓아내서 폭정을 바로잡는 공이 기준이 아니라,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나눠먹기였다. 여원 부원군 송일과 파성군 윤금손 같은 이는 자신들은 아무런 공이 없다고 스스로 공신을 반납하고자 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소수의 공신도 있었던 것이다.(중략) 조선에서 공신은 어마어마한 혜택이 주어진다. 공신전이라고 해서 토지와 노비가 주어지고, 자손에게 세습할 수 있으며 음서의 길도 열어 주었다. 세금도 기본적으로 내지 않는다. 공신전으로는 경기도 지역의 토지를 주었으나, 공신전이 늘어나면서 나누어 줄 토지가 모자라서 다른 지역으로까지 확대했다. “경기도에 사는 백성들의 재산 10분의 3, 4는 공신들에게 바쳐집니다.”『중종실록』 2년 9월 9일 (중략) 그러나 세종은 달랐다. 국경의 4군6진을 개척한 최윤덕·이천·김종서뿐만 아니라 영의정으로 20여 년 동안 자신을 보필한 황희, 맹사성 등도 공신에 오르지 못했다. 세종은 상벌을 엄격하게 해서 재위 32년 동안 한 명의 공신도 임명하지 않았다. 공신이 많은 만큼 임금에게는 좋을 수 있으나 나라와 백성에게는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4장 중종의 개혁정치, 조광조와 함께 사라지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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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500년 역사를 압축한 데이터 사진
-한 자 한 자 직필해야 한다는 조선의 기록정신

역사는 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을 대표하는 기록물이다. 조선은 임금의 말씀이나 행동, 신하들과의 정사를 기록하는 두 직책이 있다. 바로 사관과 주서다. 조선왕조실록은 사관이 기록한 사초를 기초로 해서 춘추관에서 기록한 「시정기」, 「등록」 등을 모아서 왕의 사후에 ‘실록청’을 설치해서 편찬한다. 현재의 왕은 자신의 기록을 볼 수 없었는데, 이는 사관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못하면 사실(史實)이 왜곡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관이 사초를 고치는 것은 목숨과 바꾸는 일이었다.

예종1년, 『세조실록』을 편수하기 위해서 사초를 거두어 들였다. 그런데 사초에 사관의 이름을 쓰게 하자, 이미 제출된 사초를 다시 빼내 고치는 일이 벌어졌다. 봉사첨정 민수는 ‘양성지는 구용, 즉 구차하게 아부한다’는 등 대신들을 비판하는 내용을 많이 기록했다. 양성지는 춘추관의 당상관으로 『세조실록』의 편수관이 된 이로 내용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민수는 양성지가 그 내용을 볼까 두려워서 한때 동료였던 기사관 강치성에게 부탁해서 사초를 빼내서 ‘구용’이란 글자를 지웠다. 이 외에도 몇 군데 더 고쳤다. 그런데 수정한 사실이 알려졌다. 강치성은 동료의 부탁으로 사초를 빼내준 것만으로 참형에 처해졌다. 사초를 고친 민수도 참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했으나, 예종의 세자시절 공부 스승이었고, 부모가 살아계시는 외아들임을 눈물로 호소해서 사형은 면할 수 있었다. 이처럼 사초를 고치는 것은 목숨과 바꾸는 일이었고, 사초를 기록하는 것도 이와 비슷했다. “사관의 직책은 중요하다. 사실에 근거해서 한결같이 기록한다면 천년 후에도 역사는 없어지지 않는다.” _『성종실록』 11년 1월 18일

역사교양 전문 PD가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쓴 책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역사적 지식과 안목을 키운다

다큐멘터리는 사적인 감정이나 선입관을 빼고 철저한 사실을 근거로 객관적 시각을 전달하는 것이 생명이다. 저자는 KBS PD로 입사해 [KBS 스페셜], [역사추리] 등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그런 훈련을 받았고, 그를 바탕으로 역사 프로그램 [TV 조선왕조실록]을 만들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서도 객관적인 관점에서 원전을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진진했고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다큐멘터리 PD로서 객관적 사실을 통해서 진실을 찾아내려는 직업적 소명이 꿈틀거렸다. 어느 순간 이 소중하고 방대한 기록물을 전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KBS를 퇴직한 후 제2의 인생을 투자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새롭게 알게 된 역사적 사실이 수두룩했고, TV 드라마 등에서 잘못 알려진 내용도 발견했다. 무엇보다도 조선의 왕, 수많은 신하들과 시공간을 초월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에 희열을 느꼈고,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 즐거웠다. 저자 왕현철은 우리가 역사를 좀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조선왕조실록을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충실하게 들여다보고 깊이 있게 해석한다. 마치 TV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역사의 맥락이 잡히는 스토리가 가득
-조선의 중요한 사건과 인물의 핵심을 토크로 기억하게 한다

어떤 인물이나 사건에는 그것이 형성되고 일어난 원인이 있다. 현재 드러난 부분의 근원이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떤 흐름으로 흐르는지 맥락을 파악하면 그 인물과 사건 속의 진짜 모습이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은 4,770만 자로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저자는 이 방대한 자료의 바다 속에서 역사적 순간의 대화를 포착하고 이를 날것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독자의 상상력을 한껏 끌어올린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가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요즈음 대간들의 말은 가벼워서 따를 수 없습니다. 그 말이 올바르지 못하면 꾸짖고 나무라는 것이 옳습니다.” “대간이 업무로 말을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 말을 취하고 버리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다. 대간의 말을 꾸짖으면 누가 감히 말하겠는가? 대간의 논박은 옳다.” 대간의 임무는 임금에게 간언을 올리는 것이다. 그 말이 설사 이치에 맞지 않더라도 대간에게 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여겨왔다. 언로를 차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_『성종실록』 9년 4월 21일

“내가 목마른 듯이 어진 자를 구할 때 현량과를 통해서 훌륭한 선비를 많이 얻었다. 나라의 복이다.” 그러나 중종은 기묘사화를 일으켜서 그 인재들을 죽였고, 다시 인재들을 구한다고 했으나 인재들은 이미 땅속에 있었다. _『중종실록』 14년 4월 15일

역사는 사건과 인물을 만들고 사건과 인물은 역사를 쌓아간다. 그 속에는 치열한 시대정신과 삶의 철학이 있다. 조선의 500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왕PD의 토크멘터리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실록의 콘텐츠를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맛깔나게 버무려 역사적 지식과 안목을 키워줄 뿐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넘긴 사건과 인물을 포착해 역사 읽기의 재미에 빠지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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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현철
KBS PD로 공채 입사해서 , <세계는 지금>, <역사탐험>, <역사추리>, 등 30여 년 동안 TV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특히 조선의 역사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으며 KBS 퇴직 후 제2의 인생으로 <조선왕조실록>의 완독에 도전했고 제1권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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